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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하면 떠오르는 이사람 페드로 마르티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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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서 공격은 타자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타자를 공격하는 투수가 있었다. 바로 페드로 마르티네스다. 마르티네스는 최고의 구위와 하늘을 찌르는 자신감으로 스테로이드 시대를 정면돌파한 '우리 시대의 월터 존슨'이었다.

최종 성적은 409선발 219승100패 2.93, 2827.1이닝 3154삼진. 200승-2점대 평균자책점 투수는 역대 20명뿐으로, 마운드의 높이가 15인치에서 10인치로 낮아진 1969년 이후 데뷔한 투수 중에서는 마르티네스가 유일하다(마르티네스에 앞서 데뷔한 투수는 1967년에 데뷔한 톰 시버). 200승-2점대-3000K를 달성한 투수도 월터 존슨, 밥 깁슨, 톰 시버에 이어 마르티네스가 역대 4번째다.

마르티네스의 통산 조정 평균자책점(154) 1000이닝 이상을 던진 역대 485명의 선발 투수(선발 경기 80% 이상) 중 1위에 해당된다(2위 월터 존슨 147, 3위 로저 클레멘스 143). 불펜투수로까지 확대하더라도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한 투수는 마리아노 리베라(206)뿐이다. 1900년 이후 200승 이상을 거둔 투수는 팀 웨이크필드까지 포함해 88명. 그 중 통산 승률이 마르티네스(.687)보다 높은 투수는 16년간 리그를 11번 제패한 팀에서 뛰었던 화이티 포드(.690)뿐이다.

마르티네스의 통산 피안타율(.214)은 라이언(.204)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라이언과 달리 마르티네스는 볼넷에도 인색한 투수였다. 마르티네스의 통산 출루허용률(WHIP) 1.054는 역대 110명의 200승 투수 중 최고 기록으로, 2위 크리스티 매튜슨(1.058) 3위 월터 존슨(1.061) 4위 모데카이 브라운(1.066)은 모두 데드볼 시대의 투수들이다. 또한 마르티네스(10.04)는 랜디 존슨(10.61)과 함께 9이닝당 탈삼진 숫자가 10개를 넘은 역대 단 2명의 선발투수다.

전성기 시절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구위는 충격 그 자체였다. 사이드암에 가까운 스리쿼터 형태로 뿌려지는 95마일짜리 강속구는 마치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비행했으며, 패스트볼과 똑같은 투구폼으로 던저져 도저히 구분해낼 수 없는, 게다가 비정상적으로 긴 중지 덕분에 비정상적인 역회전이 걸렸던 서클 체인지업은 당대 최고였다. 커브의 낙차와 하드 슬라이더의 꺾임 역시 무시무시했으며, 슬라이더 만큼이나 휘어지는 컷패스트볼까지 던졌다.

랜디 존슨의 구위는 최고였다. 그렉 매덕스의 제구력도 최고였다. 하지만 마르티네스는 구위와 제구력이 모두 최고였다. 마르티네스는 2007년 역대 15번째이자 히스패닉 선수 최초로 3000탈삼진을 넘어섰는데, 볼넷을 1000개 이상 내주기 전에 이를 달성한 것은 퍼거슨 젠키스, 매덕스, 커트 실링에 이어 역대 4번째였다. 마르티네스의 탈삼진/볼넷 비율(4.15)은 1900년 이후 투수 중 실링(4.38)에 이은 역대 2위다. 3000이닝에 도달하기 전에 3000K를 달성한 것도 놀란 라이언과 존슨에 이어 역대 3번째였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신은 그에게 그 구위를 담을 그릇을 내려주지 않았다.

다저스에서 몬트리올로
마르티네스는 1971년 도미니카공화국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신발은 없어도 글러브는 있다는' 도미니카 출신답게 야구와 함께 자랐고, 17살 때인 1988년에는 형 라몬, 막내 동생 헤수스와 함께 LA 다저스에 입단했다. 마르티네스는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고, 도미니카에서부터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다. 이에 미국 땅을 밟을 즈음에는 불편없이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1992년 싱글-더블-트리플A를 휩쓸며 <스포팅뉴스> 선정 '올해의 마이너리거'에 오른 마르티네스는, 1993년 시즌이 끝날 무렵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당시 세 살 위의 형 라몬은 이미 오렐 허샤이저를 제치고 다저스의 에이스가 되어 있었다. 1990년 20승, 1991년 17승을 올리며 각광을 받았던 라몬은, 그러나 1992년 어깨 부상을 당했고,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풀타임 첫 시즌이었던 1993년, 마르티네스는 때로는 형을 구원하기도 하면서 불펜투수로서 10승5패 2세이브 2.25의 좋은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다저스는 시즌 후 그를 몬트리올의 2루수 델라이노 드실즈와 바꿔 버렸다. 프레드 클레어 단장, 토미 라소다 감독, 프랭크 조브 주치의는 작은 체구(178cm 77kg), 위험한 투구폼, 강속구라는 부상에 필요한 삼박자를 모두 갖춘 마르티네스가 결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완벽한 오판이었다.

이적 후 두 번째 선발 등판이었던 1994년 4월13일 신시내티전. 마르티네스는 첫 22명의 타자를 완벽히 처리, 퍼펙트게임에 도전했다. 남은 아웃카운트는 5개. 하지만 23번째 타자인 레지 샌더스를 맞히면서 대기록을 날렸다. 그것도 볼카운트 2-0에서 나온 너무도 아쉬운 몸맞는공이었다(놀랍게도 샌더스는 마르티네스가 자신을 고의적으로 맞혔다고 생각해 마운드로 돌진했다). 마르티네스는 8회를 무사히 넘겼다. 노히트노런까지 남은 아웃카운트 3개. 그러나 9회 첫 타자에게 안타를 맞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1995년 6월3일 샌디에이고전. 마르티네스는 기어코 9회까지 27명을 완벽히 막아내는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문제는 몬트리올 또한 9회까지 1점도 뽑지 못했다는 것. 이에 경기는 연장전으로 돌입했다. 10회초 몬트리올이 1점을 얻으면서 역사적인 '10이닝 퍼펙트'가 만들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마르티네스는 10회말의 첫 타자이자 경기 28번째 타자인 빕 로버츠에게 2루타를 맞았다. 펠리페 알루 감독은 투구수가 96개임에도 마르티네스를 마운드에서 내렸다. 결국 마르티네스는 9이닝 1안타 무실점 승리에 만족해야 했다. 몬트리올의 믿음 속에서, 마르티네스는 성장을 거듭했다.

몬트리올에서 보스턴으로
마르티네스가 몬트리올에서 만난 귀인은 바비 쿠에야르 투수코치였다. 쿠에야르 코치는 마르티네스에게 '대량 살상무기' 서클 체인지업을 장착시켰다. 한편 쿠에야르 코치는 2002년 미네소타의 트리플A 팀에서 한 좌완 투수에게 체인지업을 가르쳐줬다. 그는 요한 산타나였다.

1997년 서클 체인지업의 비중을 크게 늘린 마르티네스는 31경기에 선발로 타서 13번을 완투하고(4완봉), 241.1이닝에서 305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17승8패 1.90. 마르티네스가 패한 8경기에서 몬트리올이 뽑아낸 점수는 단 10점이었다. '1점대 평균자책점+300K'는 1972년 스티브 칼튼 이후 최초. 우완으로는 1912년 월터 존슨 이후 무려 85년 만이었다. 마르티네스는 사이영상 투표에서 25장의 1위 표를 얻어 3표에 그친 그렉 매덕스를 제쳤다. 이로써 1991년부터 6년간 이어온 글래빈-매덕스-매덕스-매덕스-매덕스-스몰츠의 사이영상 퍼레이드는 마감됐다. 하지만 몬트리올은 마르티네스를 계속 데리고 있을 능력이 없었다. 이에 그를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았다.

양키스, 보스턴, 볼티모어, 토론토, 클리블랜드, 메츠, 샌디에이고 등 무수한 팀들이 너도 나도 데려가겠다고 달려들었다. 심지어는 마르티네스를 버렸던 다저스 클래어 단장마저 몬트리올 짐 베티에 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몬트리올은 클리블랜드에게 재럿 라이트만 내주면 마르티네스를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마르티네스와의 재계약에 자신이 없었던 샌디에이고 역시 대신 플로리다에서 케빈 브라운을 데려왔다. 이에 마르티네스 쟁탈전은 양키스와 메츠, 보스턴의 3파전으로 좁혀졌다.

메츠는 3명을 고르라면서 6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제시했다. 명단 안에는 마이너리거 시절 '제너레이션 K'로 불리며 엄청난 각광을 받았던 폴 윌슨과 제이슨 이스링하우젠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몬트리올은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실패를 맛본 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양키스 제안의 핵심 선수는 1997년 더블-트리플A 135경기에서 .315 30홈런 92타점을 기록, 메이저리그 입성 준비를 끝마친 3루수 유망주 마이크 로웰이었다. 하지만 몬트리올은 투수를 받고 싶어했고 결국 칼 파바노와 토니 아마스 주니어를 제시한 보스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특히 파바노는 1997년 트리플A 23경기에서 11승6패 3.12를 기록, 메이저리그에서의 좋은 활약이 기대되던 상황이었다.

보스턴은 트레이드 성사 한 달 만에 마르티네스와 6년간 7500만달러 계약을 맺었다. 그 해 매덕스가 애틀랜타에 남으면서 맺은 5년간 5750만달러를 뛰어넘는, 투수 역대 최고 대우였다. 로저 클레멘스를 내보내면서 팬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던 보스턴 댄 두켓 단장은 마르티네스 영입으로 다시 최고의 단장이 됐다.

절정
1998년 마르티네스는 19승7패 2.89를 기록, 1위 표를 싹쓸이한 트리플 크라운 달성자 클레멘스(20승6패 2.65)에 이어 사이영상 2위에 올랐다. 펜웨이파크에는 '클레멘스가 누구냐'(Rocket Who?)라는 피켓이 등장했다.

6년 만에 형과 다시 한솥밥을 먹게 된 1999년, 마르티네스는 23승4패 2.07이라는 눈부신 활약을 했다. 9이닝당 13.2삼진의 신기록을 세웠으며, 213⅓이닝을 던지면서 솔로홈런만 9개를 내주는 괴력을 선보였다. 두 번째 사이영상을 만장일치로 따낸 마르티네스는, 같은 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따낸 랜디 존슨과 함께 게일로드 페리 이후 역대 2,3호 양대리그 수상자가 됐다(이후 클레멘스, 할러데이도 가세). 마르티네스는 1992년 데니스 에커슬리 이후 리그 MVP에 오르는 첫 번째 투수가 될 것으로도 보였지만, 더 많은 1위 표를 얻고도 총점에서 이반 로드리게스에게 밀렸다(로드리게스 252점, 마르티네스 239점).

2000년 마르티네스는 18승6패 1.74를 기록, 11개 부문에서 리그 1위에 올랐고, 2년 연속 만장일치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특히 피안타율 .167를 기록, 루이스 티안트가 1968년에 세웠던 라이브볼 시대 최고 기록(.168)을 경신했다. 1968년 아메리칸리그의 평균 타율이 역대 최저인 .230이고, 칼 야스트렘스키가 .301의 최저 타율로 타격왕을 차지했던 반면, 2000년 아메리칸리그의 평균 타율은 .276에 달했으며, 노마 가르시아파라는 .372로 타격왕에 올랐다(흥미롭게도 티안트와 마르티네스, 야스트렘스키와 가르시아파라는 모두 보스턴 선수들이다).

스테로이드가 불러온 장타 폭발로 인해 타고투저가 절정에 달했던 그 해, 마르티네스가 기록한 평균자책점 1.74는(2위 클레멘스 3.70, 리그 평균 4.92), 조정 평균자책점으로 따지면 291에 달하는 것이었다. 즉 평균자책점 면에서 마르티네스는 그 해 같은 리그의 평균적인 투수보다 3배 더 뛰어난 투수였던 것이다. 이는 1914년 더치 레오나드가 20세기 평균자책점 기록(0.96)을 세우면서 기록한 279를 넘는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또한 마르티네스는 선발 투수로는 최초로 피안타(128)의 2배가 넘는 삼진(284)을 잡아냈다. 그 해 마르티네스로부터 고의사구를 얻어낸 타자는 아무도 없었다.
 
1997년부터 2003년까지 7년간, 마르티네스는 5개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따냈고 213이라는 충격적인 조정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당시 그는 그야말로 지구를 정복하러 온 외계인이었다.

부상, 저주와의 싸움
절정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의 어깨는 점점 망가지고 있었다. 1999년 마르티네스는 전반기에만 15승(3패 2.10)을 따냈다. 마르티네스는 쉬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말을 뒤로 하고 펜웨이파크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AL의 선발투수로 나섰다. 그리고 경기 시작과 함께 배리 라킨-래리 워커-새미 소사-마크 맥과이어를 4타자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 칼 허벨이 1934년 올스타전에서 연출했던 5타자 연속 탈삼진을 재연해냈다(허벨은 첫 두 타자에게 출루를 허용한 후에 베이브 루스-루 게릭-지미 팍스-알 시먼스-조 크로닌을 삼진으로 잡아냈다).

하지만 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마르티네스는 후반기 첫 등판에서 부상을 당했고, 선발로 29경기밖에 나서지 못하고 시즌을 마감했다. 이듬해인 2000년, 마르티네스는 부상자명단에 오르지 않았음에도 1999년과 같은 29경기 선발에 그쳤다. 지미 윌리엄스 감독과 조 캐리건 투수코치가 철저한 보호를 해줬기 때문이었다. 그 해 마르티네스는 한 번도 휴식일이 적은 등판을 하지 않았고, 절반이 넘는 15경기는 5일 이상 푹 쉬고 등판했다. 그럼에도 마르티네스는 2001년 부상으로 시즌의 절반을 날렸다.

마르티네스는 저주를 깨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노력했다. 이에 양키스를 상대로 전의를 불태우기보다는 데릭 지터와 친하게 지내는 데 여념이 없었던 노마 가르시아파라를 비난하기도 했다. 마르티네스는 밤비노의 저주를 묻는 질문에 "밤비노가 누구냐? 데려오면 내가 머리통을 날려주겠다"라고 하기도 했다. 물론 밤비노가 누구인지는 아주 잘 알고 한 말이었다.

1999년 마르티네스는 포스트시즌에서 정상적인 몸상태가 아니었음에도 90마일 초반대의 패스트볼을 가지고도 17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클리블랜드와의 디비전시리즈 최종 5차전에서는 8-8이었던 4회말에 올라와 6이닝 무실점의 구원승을 따냈으며, 양키스와의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에서도 클레멘스와 선발 맞대결을 벌여 7이닝 무실점 승리를 따냈다. 하지만 보스턴이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따낸 승리는 그 1승이 전부였다. 그 해 포스트시즌에서 마르티네스를 제외한 나머지 보스턴 선수들의 평균자책점은 6.10에 달했다.

2003년 보스턴은 다시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양키스와 격돌했다.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7차전. 마르티네스는 야구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경기에 나섰다. 3차전 클레멘스와의 대결에서 7이닝 4실점으로 패전투수(클레멘스 6이닝 2실점 승리)가 됐던 마르티네스는 7회까지 2실점으로 버티고 팀의 5-2 리드를 이끌었다(클레멘스는 3이닝 4실점 강판). 하지만 8회가 되자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첫 타자 닉 존슨을 유격수 땅볼로 잡아냈지만 지터에게 2루타, 버니 윌리엄스에게 중전적시타를 맞아 3점째를 허용. 결국 그래디 리틀 감독이 올라왔다. 투구수가 120개에 이른 마르티네스는 당연히 교체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리틀 감독은 혼자 마운드를 내려왔다. 더 던지겠다는 마르티네스를 믿은 것. 하지만 마르티네스는 마쓰이 히데키와 호르헤 포사다에게 연속 2루타를 맞아 동점을 허용했고, 보스턴은 연장 11회말 팀 웨이크필드가 애런 분에게 끝내기홈런을 맞아 결국 월드시리즈 진출의 문턱에서 또 한 번 주저앉았다. 경기가 끝난 후 마르티네스는 "더 던지겠다고 한 것도 경기를 망친 것도 나다"며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지만 리틀 감독의 해임을 막지 못했다.

우승, 그리고 이적
2004년 챔피언십시리즈. 보스턴은 다시 만난 양키스를 상대로 3연패 후 4연승이라는 기적을 연출했다. 챔피언십시리즈에서 특별한 활약을 하지 못했던 마르티네스는, 하지만 월드시리즈 3차전에 나서 7이닝 무실점 승리를 따냈다. 보스턴에서의 마지막 등판이었다. 보스턴은 구속이 크게 떨어지고 평균자책점이 전년도 2.22에서 3.90으로 오른 마르티네스를 잡지 않았다.

보스턴과 양키스의 외면 속에, 마르티네스를 데려간 팀은 메츠였다. 메츠는 '마르티네스의 어깨는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전 단장 스티브 필립스의 말을 무시하고 마르티네스와 4년간 5300만달러 계약을 맺었다. 필립스의 말은 완전히 틀린 것으로 보였다. 입단 첫 해 마르티네스가 떨어진 구속으로도 15승8패 2.82(평균자책점 4위)라는 준수한 활약을 했기 때문. 하지만 마르티네스는 이듬해부터 부상에 시달렸고, 결국 나머지 3년 동안 17승15패 4.74에 그쳤다.

2009년 마르티네스는 7월에서야 필라델피아와 계약했다. 그리고 8월부터 팀에 합류, 챔피언십시리즈 2차전에서 다저스를 상대로 7이닝 무실점의 깜짝 호투를 선보였다. 그리고 벌어진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 2차전에 나선 마르티네스는 마크 테세이라와 마쓰이 히데키에게 홈런을 맞으며 6이닝 3실점 패전을 안았고, 찰리 매뉴얼 감독이 믿고 맡긴 6차전에서도 4이닝 4실점으로 무너졌다. 결국 필라델피아는 2승4패로 시리즈를 마감했다.

2010년 마르티네스는 계약이 원활하지 않자 2010년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2011년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2011년 역시 메이저리그에서 뛰지 못했고,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마르티네스는 스테로이드로 무장한 골리앗들과 싸워 이긴 다윗이었다. 팬들은 거침없는 선제 공격으로 거인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그를 보면서, 투수로부터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짜릿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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