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석,,,,,,에 대해 잠깐 알아볼까
컨텐츠 정보
- 539 조회
- 10 댓글
- 0 추천
- 목록
본문
김한석
지금은 많이 묻혔지만 과거 나름 잘나갔던 개그맨.
요즘 인터넷에서는 실제로 길거리에 유리방 갖다놓고
그 안에서 100일 동안 살게 했던 예능 '유리의성'의 출연자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김한석은 연예계에서 굉장히 파란만장한 연애사를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웬만한 드라마 영화 뺨치는 그의 연애사를 알아보자
때는 중학교 1학년.
김한석은 동창인 박선영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1년에 걸친 마음 속 짝사랑 끝에, 김한석은 중2때부터 본격적으로 박선영을 쫓아다니며
책상에 '좋아해'라고 써놓거나,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등 대놓고 구애를 시작했다.
그러나 김한석은 날라리였고, 박선영은 의사집안에 모범생이었다.
박선영은 날티나는 김한석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성인이 되기 전까진 남자친구를 사귈 생각도 없었다.
이를 눈치 챈 김한석은 행실을 바르게 하고 공부를 열심히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고
마침내 중학교 졸업식 즈음, 박선영이 김한석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줬다.
김한석이 박선영에게 반해 쫓아다닌지 무려 1년이 지난 후였다.
신이 난 김한석은 밤잠을 설쳤고, 다음 날 잔뜩 꾸민 채 데이트에 나갔다.
양복차림에 넥타이, 뾰족구두까지 신은 채로...
나름 꾸민다고 꾸민거고 성인이 보기엔 귀엽지만 중학생이 이러면 날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박선영은 당시 사회상과 엄한 집안 교육으로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남자를 사귀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그녀도 1년이 넘는 구애와 김한석의 달라진 모습에 호감을 가진 상태였다.
그래서 그녀는 데이트 날 "우리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 열심히 하고, 대학교 가면 사귀자"라고 말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데이트 당일.
김한석의 날티나는 복장을 본 박선영은 크게 실망했고
"창피하니까 한걸음 뒤에서 걸어라"라고까지 하며 냉랭하게 대했다.
엄청 기대하고 나왔던 김한석은 김한석대로 상처받고 화가 났고
데이트 후 박선영에게 불만과 분노, 섭섭함 등 온갖 감정을 담아 이별을 고하는 편지를 보낸다.
편지를 받은 박선영은 그제서야 미안함을 느끼고
'대학생이 되면 내가 먼저 김한석을 찾아가 사과하고 고백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졸업식즈음의 데이트를 끝으로 서로 연락이 끊겼고
둘의 치기 어린 첫사랑이 끝나는 듯 했다.
그리고 3년 후.....
성인이 된 김한석은 매우 잘 나가고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연기자를 지망하다가 대학교에 와서 희극인으로 진로를 틀었다.
이후 이휘재와 콤비를 이뤄 소위 '뜬' 희극인이 되었고 TV에도 자주 나왔다.
그런 김한석이 성인이 된 박선영이 보던 TV에도 나왔음은 물론이다.
김한석의 모습을 본 박선영은 3-4년 전쯤 했던 결심을 떠올렸고
설렘 반, 반가움 반의 감정으로 꽃다발을 들고 김한석의 공연장에 찾아갔다.
그러나....
공연장에 간 박선영은 유명 개그맨들과 어올리고 있는 김한석을 보고는
자신의 초라함, 무슨 낯으로 찾아왔는지 모를 부끄러움 등의 감정이 섞여
대기실 문틈으로 김한석을 훔쳐보다가 도망치듯 돌아간다.
연예인이 된 김한석을, 박선영도 마음 속에서 놓아주며
둘의 관계는 완전히 끝나갔다.
1997년, 26살의 나이로 김한석은 배우 이상아와 결혼했고
박선영은 몇년 후 요리 전문가의 꿈을 가지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잘나가던 김한석의 삶에 악재가 닥쳐오기 시작했다.
98년, 결혼 생활이 일 년이 채 가지 못하고 이혼을 맞이했고
잠깐의 인기는 식어버려 일도 끊겨버렸다.
TV출연은커녕 밤무대 DJ를 전전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심지어 그가 바람을 폈다는 악성 루머까지 나오며
밤무대에서조차 관객들이 던진 맥주나 과일, 음식에 맞고, 심지어는 인분까지 받았다.
그래도 그는 열심히 일했고, 2000년대 들어서 어느정도 재기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바로 그 2000년, 13년만에 김한석과 박선영이 재회한다.
둘의 나이는 어느덧 29살이었다.
계기는 바로 그 유명한 <TV는 사랑을 싣고>.
김한석은 문뜩 박선영 생각이 나 그녀를 만나고 싶다고 했고,
제작진은 수소문 끝에 미국 유학 중이던 박선영에게 연락이 닿았다.
그리고 박선영이 고민 끝에 한국에 들어와 방송에 출연하며 둘은 다시 만났다.
하지만 박선영은 미국 유학 중이라 오래 한국에 있을 처지가 아니었고,
그 짧은 시간은 지난 긴 시간동안 멀어진 둘 사이 간극을 메우기엔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김한석과 박선영은 식사만 한번하고 헤어진다.
다시 시간이 흘러 2002년. 둘의 나이 31살.
박선영은 요리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고, 김한석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그런 박선영을 김한석이 월드컵 응원 모임에 불러 함께 응원한 것을 계기로
둘 사이 감정에 다시금 불이 붙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연락을 이어나가며 썸을 탔고
명백히 서로 좋아하는, 연애 직전의 단계에 이르렀다.
김한석이 박선영에게 반한 지 18년째 되는 해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
김한석의 아버지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시한부가 되어버린다.
이혼 직후보단 재기했다지만, 김한석의 사정은 여전히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병원비를 내고 병간호를 해야한다는 부담감,
시한부 아버지를 두고 연애나 하려고 했다는 자괴감,
이혼남에 넉넉치 않은 자신에 비해 의사 집안에 미국 유학 다녀온 여자의 탄탄대로를 망치고 있다는 죄책감.
모든 감정이 겹쳐 김한석은 박선영과의 연락을 끊어버렸다.
박선영이 다시는 자신에게 연락하지 못하게 모든 수단을 지워버렸다.
영문도 모르고 갑작스레 연락이 두절되자
박선영은 상처 받고 방황하다가 "다시는 김한석을 보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고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박선영 또한 결혼 생활이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이혼을 맞이했고
이후 김한석과 기적적으로 다시 재회하게 된다.
연락두절로부터 4년 뒤, 35살의 박선영은 요리 아.카데미 팀장이 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를 MBC에서 '찾아라 맛있는 TV'라는 프로의 요리 전문가로 섭외했다.
그리고, MBC는 그 프로그램의 진행자 중 한 사람으로 김한석도 섭외했다.
놀랍게도, 둘의 관계를 전혀 모른 제작진에 의한 순전한 우연이었다.
김한석과 함께 TV프로를 한다는 걸 알게 된 박선영에게
알게 모르게 한 줄기 희망이 샘솟았다.
어쩌면, 무슨 사정이 있었던 것이고 다시 예전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그런 일말의 희망 말이다.
하지만, 김한석은 다시 만난 박선영에게 말 한마디 먼저 걸지 않았다.
박선영이 말을 걸면, 매우 차갑게 응대했다.
후일 김한석이 말하길, '나 같은 놈 말고 다른 좋은 사람 만나라'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무려 9개월동안 지속됐다.
매번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박선영은 너무 힘든 나머지 방송을 그만두고 다시 유학을 가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한석과 겨우 약속을 잡아 그를 불러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박선영은 만나자마자 감정이 복받쳐
아무말도 못하고 펑펑 울기만 하다가 가버렸다.
나중에 전화로서야 "방송 관두고 유학간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김한석은 이번에도 "돈이나 벌지 왜 또 유학을 가냐"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이에 박선영은 또 울면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뒤, 김한석은 23년 간의 둘의 관계에 대해 회상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 가지를 깨달았다.
자신이 여전히 박선영을 좋아한다는 것,
박선영이 자신을 붙잡아 달라고 하고 있다는 것.
그 길로 김한석은 박선영의 집으로 달려가 손을 붙잡고 "가지 마"라고 했고
마침내 둘은 그날로 연인이 됐다.
중학교 시절 만난 지 23년째 되는 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결혼을 약속했고, 해피엔딩이 눈 앞에 와있는 것처럼 보였다.
김한석이 두통을 호소하기 전까진....
극심한 두통을 겪던 김한석은 병원에서 뇌동정맥기형 진단을 받았다.
뇌혈관이 꼬인 것이다.
10시간이 넘는 대수술 끝에 위기는 넘겼지만,
신체장애가 와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고 언어장애까지 생겼다.
이는 사실상 방송인으로서 사망선고나 다름 없었다.
자신의 인생이 끝장났다고 생각한 김한석은,
박선영에게 다시 차갑게 대하며 자신을 떠나라고 거듭 말했다.
하지만 박선영은 묵묵히 김한석 곁을 지켰다.
수술 때부터 간호를 자처하고 재활까지 도왔다.
그리고 2008년, 결국 김한석은 건강을 회복해냈다.
2008년 2월, 마침내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린다.
중학교 1학년 때 만나 25년이 흘러있었던 해였다.
결혼식날 김한석은, 어금니를 악물어가며 울음을 참았지만
결국 신랑 입장 때 펑펑 울며 오열했다고 한다.
결혼 후 두 사람은 난임의 어려움을 겪은 끝에 득녀,
현재 금슬 좋기로 유명한 부부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관련자료
댓글 10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