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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스펙 - 데이브 윈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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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 뉴욕 양키스

포지션 : 우익수

활동기간 : 1973 ~ 1995

별명 : The Wave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의 라인드라이브 타자이며 가장 출중한 하드웨어의 소유자였던 데이브 윈필드.

그는 미네소타 출신으로 1라운드에 지명되어 샌디에고 파드리스 선수가 된다. 그는 계약 후 2주만에 빅리그에 올라왔으며 다이나믹한 수비와 시원한 공격력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2년차인 1974년 20홈런으로 쾌조의 스타트를 끊은 그는 부상으로 얼룩진 1990년을 제외하고는 20년간 두자릿수 홈런에 세자릿수 안타를 매년 기록했다. 신장이 6피트 6인치에 달했던 그는 강한 손목을 가지고 있었고 큰 덩치에도 놀라운 푸트웍을 자랑했다. 어시스트도 매년 10개 이상을 기록했으며 레인지펙터는 당시 외야수들의 1.5배에 가까운 범위를 가졌다.

파드리스에서 화이팅 넘치는 8년을 보낸 뒤 윈필드는 10년간 1,400만불이라는 대박을 찍고 뉴욕 양키스의 일원이 된다. 그의 계약 내용때문에 잡음이 많았는데 그것은 엘리베이터조항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것때문에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와 윈필드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윈필드는 온갖 위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양키스의 10년을 뛰면서 계약 마지막 해를 제외하곤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이후 에인절스를 거쳐 토론토로 이적한 윈필드는 첫 월드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맛보게 된다. 당시 토론토는 사상 최고의 전력이었다. 잭 모리스-지미 키-후안 구즈만의 원-투-쓰리 펀치와 로베르토 알로마-존 올러루드-조 카터 등 타선도 엄청났었던. 윈필드도 사상 최고령 100타점 기록을 올리며 토론토가 월드시리즈를 재패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듬해 고향인 미네소타를 거쳐 클리블랜드에서 마지막을 맞이한다. 그의 나이 타자로서는 무색할 정도의 45세.

양키스와의 악연은 징그러웠지만 그에게 최고의 전성기는 양키스에서의 10년이었다. 뉴욕 팬들은 윈필드보다 매팅리에게 더 많은 환호를 보냈지만 매팅리는 2,200안타에 그치며 은퇴했고 윈필드는 끝까지 뛰며 3천안타를 달성했다.

그의 등번호 31번은 파드리스에서 영구 결번되었고 2001년 2수만에 명예의전당에 헌액된다. 물론 스타인브레너의 비웃음을 호탕한 웃음으로 받아넘기면서.

 

2,973경기 출장

통산 타율 0.283  465홈런 1,833타점  3,110안타 223도루

골든 글러브 7회, 월드시리즈 MVP 1회, 실버슬러거 6회

커리어 하이 - 1979년  타율 0.308  34홈런 118타점  184안타 15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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